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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낭만 옆에서 재채기 연발하는 의대생의 봄
🇰🇷 의대생존기2시간 전조회 48댓글 7
인스타 피드만 보면 벚꽃 시즌이 세상에서 제일 낭만적인 계절인 줄 알잖아요. 파스텔 톤 원피스 입고 꽃잎 날리는 거 슬로모션으로 찍어서 올리면 좋아요 300개 뚝딱이고. 근데 저 그 영상 찍는 사람 바로 옆에서 재채기 연발하면서 코 풀고 있는 사람이에요 진짜로. 본과 3학년이면 면역학 배우면서 본인 몸으로 실습하는 느낌이랄까. IgE 매개 반응이 이론이 아니라 체감이 되는 시즌이 돌아왔습니다.
솔직히 벚꽃 명소라는 데 가보면 사진 찍을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거든요. 사람이 진짜 미친 듯이 많아서 꽃보다 사람 머리를 더 많이 보고 옴. 돗자리 깔 자리 잡으려면 새벽부터 가야 되고, 간신히 자리 잡아도 옆에서 블루투스 스피커로 노래 틀고 치킨 뜯는 소리에 둘러싸여서 고요한 봄날의 정취 이런 거 없어요. 거기다 바람 한번 불면 꽃잎이 아니라 미세먼지랑 꽃가루가 같이 날아와서 눈이랑 코가 동시에 항의함. 저는 작년에 여의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눈이 너무 부어서 다음 날 실습 들어갈 때 교수님한테 "어제 울었냐"는 소리 들었어요. 아뇨 알레르기요.
의대 와서 배운 게 하나 있다면 히스타민이라는 놈이 얼마나 성실하게 일하는지예요. 꽃가루 시즌 되면 이 친구가 풀가동 들어가는데, 항히스타민제 먹으면 졸리고 안 먹으면 콧물 줄줄이고 어떻게 해도 답이 없음. 시험 기간이랑 벚꽃 시즌이 겹치는 게 진짜 잔인한 게, 약 먹고 졸면서 공부할 건지 안 먹고 재채기하면서 공부할 건지 매일 선택의 기로에 섬. 동기들 보면 마스크에 선글라스까지 풀장비하고 학교 오는 애들 있는데 수상한 게 아니라 그냥 생존 장비임.
SNS에서 "봄이 왔어요 🌸" 이러면서 예쁜 사진 올리는 사람들 탓하는 건 아닌데, 그 한 장 건지려고 뒤에서 얼마나 고생하는지는 아무도 안 보여주잖아요. 인파 뚫고 들어가서 사람 안 나오는 각도 찾느라 쪼그려 앉고, 바람 방향 맞춰서 셔터 누르고, 집 와서는 알레르기약 먹고 뻗는 거. 벚꽃의 아름다움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닌데 저는 이제 현실을 알아버린 사람이라 피드 보면서 "저 사람 항히스타민제 뭐 먹지" 이 생각부터 듦. 올해는 그냥 병원 창문으로 보는 걸로 만족하려고요. 적어도 실내는 꽃가루 농도가 낮으니까. 이게 본과 3학년의 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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