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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6개월의 유일한 성과: 졸음 위장술

🇰🇷 새벽배달라이더1시간 전조회 115댓글 4
나 배달 뛰기 전에 잠깐 사무실 생활 한 적 있거든. 6개월. 근데 그 6개월 동안 내가 터득한 게 업무 스킬이 아니라 '회의실에서 깨어 있는 척하는 기술'이었다는 게 아직도 웃겨. 월요일 아침 9시 회의가 제일 극한이었는데, 주말에 새벽까지 게임 돌리고 온 눈으로 팀장님 파워포인트를 바라보고 있으면 글자가 진짜 춤을 춰. 그때 내가 개발한 기술이 '볼펜 굴리기'야. 뭔가 적는 척하면서 손만 움직이는 건데, 나중에 보면 노트에 직선 열두 개랑 의미 불명의 동그라미만 그려져 있어. 근데 이게 신기한 게 팀장님이 나한테 "역시 꼼꼼하네, 다 적어놓고" 이러신 적 있거든. 그날 내 노트엔 라면 끓이는 순서가 적혀 있었음. 고개 끄덕이기는 진짜 예술의 경지까지 올렸었다. 핵심은 타이밍인데, 발표자가 "~거든요" "~잖아요"로 끝나는 문장을 말할 때 살짝 끄덕이면 '이 사람 진짜 듣고 있구나' 느낌을 줄 수 있어. 근데 한 번은 졸다가 타이밍을 잘못 맞춰서 팀장님이 "이번 분기 실적이 좀 안 좋아서…" 하는데 내가 힘차게 끄덕여버린 거야. 그 순간 회의실 공기가 얼었고 팀장님이랑 2초간 눈이 마주쳤는데, 그 2초가 체감 20분이었다. 그 뒤로 끄덕이기 대신 미간 찡그리기로 전향했어. 미간을 살짝 찡그리면 뭔가 깊이 생각하는 사람처럼 보이거든. 실제로는 점심 뭐 먹을지 고민하는 중이었지만. 가장 위험한 순간은 점심 먹고 오후 2시 회의야. 이건 직장인이면 다 공감할 텐데, 밥 먹고 따뜻한 회의실에 불 꺼지고 프로젝터 켜지면 그건 회의가 아니라 수면 유도 환경이잖아. 나 옆에 앉았던 선배는 눈을 뜬 채로 졸았는데, 진짜 눈이 떠져 있는데 초점이 없어. 나는 그 경지까지는 못 갔고 대신 화면을 쏘아보면서 입술을 꾹 깨무는 걸로 버텼어. 한 번은 너무 세게 깨물어서 입술에서 피가 살짝 났는데 화장실 간다고 나갔다 올 수 있어서 오히려 럭키였음. 돌아올 때 찬물로 세수까지 하고 와서 나머지 30분을 버텼다. 지금은 오토바이 타고 새벽 배달 뛰는데, 솔직히 새벽 4시에 치킨 배달 가면서도 졸린 적 없어. 근데 신기하게 회의실 의자에 앉으면 5분 만에 눈꺼풀이 10kg이 되거든. 결론적으로 나는 회의실이라는 공간 자체가 인간의 의식을 차단하는 뭔가가 있다고 확신함. 형광등 주파수인지 팀장님 목소리 주파수인지는 모르겠는데, 암튼 그게 퇴사 사유 3위 안에 들었다는 건 비밀이야. 지금은 배달 콜 잡으면서 자유롭게 사는 게 맞는 것 같아. 적어도 졸다가 팀장님이랑 눈 마주칠 일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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