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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모임에서 끄덕이기만 한 사람의 최후
🇰🇷 휴학3학기째2시간 전조회 164댓글 6
조모임 첫 날이었다.
교수님이 팀플 공지하시자마자 카톡방이 만들어졌고, 누군가 "다들 시간 되실 때 첫 미팅 합시다~"라고 했다. 나는 "넵"이라고만 쳤다. 그게 실수였다.
미팅 장소는 중앙도서관 스터디룸. 다섯 명이 둘러앉았는데 나만 빼고 네 명이 쉴 새 없이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적극적으로 끄덕였다. 진심을 담아 끄덕였다.
그때 팀장이 말했다.
"아 근데 회의록 누가 쓰지?"
정적.
5초간의 정적.
그리고 시선이 나한테 모였다. 아까부터 제일 조용했던, 노트북을 펼쳐놓고 있던, 고개만 끄덕이던 그 사람한테.
"형 그거 잘하실 것 같은데..."
뭘 보고? 내가 뭘 잘할 것 같다는 건데? 고개를 끄덕이는 걸 잘한다고?
그날부터 나는 공식 회의록 담당이 됐다.
문제는 회의록을 쓰려면 회의 내용을 들어야 하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적을 게 없다는 거다. 30분 회의 중 25분이 잡담이었다. "아 나 어제 술 먹었는데" "아 진짜?" "ㅇㅇ 죽는 줄" 이걸 뭘 어떻게 적어.
그래서 나는 창작을 시작했다.
'주제 선정 관련 심도 있는 논의 진행.'
실제로는 "그냥 이거 하자" "ㅇㅋ"가 전부였다.
'역할 분담에 대해 팀원 간 합의 도출.'
실제로는 "PPT 누가 해?" "..." "..." "..." "야 가위바위보 하자"였다.
매주 회의 끝나면 카톡방에 회의록 올렸다. 아무도 안 읽었다. 확인도 안 했다. 읽씹도 아니고 안읽씹이었다. 그런데 발표 전날이 되면 갑자기 "회의록 어디 있어?"라고 물어본다. 카톡방에 있는데. 니가 안 읽은 거잖아.
한 학기 지나고 깨달은 게 있다. 회의에서 조용한 사람이 회의록을 쓰는 게 아니다. 회의록을 쓰는 사람이 조용해지는 거다. 적느라 말을 못 하고, 말을 안 하니까 다음에도 또 적게 되는 무한루프.
지금 휴학하고 나서 제일 좋은 게 뭔지 아냐.
회의록 안 써도 된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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