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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 10분 지나면 뇌가 절전모드 됨
🇰🇷 야근러2시간 전조회 122댓글 4
회의 시작 5분까지는 괜찮다. 팀장님이 "자 오늘 안건은~" 하면 나도 노트북 펴고 고개 끄덕이고, 눈도 초롱초롱하다. 문제는 10분부터다. 누군가 "이 부분은 좀 더 논의가 필요할 것 같은데요"라고 말하는 순간 뇌가 절전모드에 들어간다. 눈은 모니터를 보고 있고 손은 마우스 위에 올려져 있는데, 의식은 이미 관악구 원룸 이불 속에 있다. 슬랙 알림이 울려도 "아 네 확인했습니다" 하면서 뭘 확인했는지 모른다. 4년차인데 이 스킬만 매년 성장하고 있다.
나름 온갖 방법을 써봤다. 물 마시기, 허벅지 꼬집기, 발가락 오므리기. 초반엔 효과가 있다. 근데 인체는 적응의 동물이라 한 달이면 그 자극에도 잠이 온다. 결국 도달한 최종 병기가 "회의록 정리하는 척하면서 타자 치기"인데, 이것도 함정이 있다. 진짜 집중 안 하고 치다 보면 회의록에 "배포 일정은 다음 주 월요일 ㅋㅋㅋㅋㅋ" 이런 게 적혀 있다. 한 번은 컨플루언스에 그대로 올라간 적 있는데 아무도 모른 걸 보면 회의록을 나 말고 읽는 사람이 없는 거다. 그러면 내가 왜 쓰고 있는 건데.
제일 위험한 건 화상회의다. 출근해서 하는 회의는 그래도 옆에 사람이 있으니까 체면이라는 게 작동하는데, 재택 화상회의는 진짜 전쟁이다. 카메라 끄면 3분 안에 눈 감기고, 카메라 켜면 고개 떨구는 순간이 녹화된다. 한번은 깜빡 졸았다 "혹시 이 부분 의견 있으세요?" 소리에 벌떡 일어나면서 "아 네 저도 그 방향이 맞다고 봅니다" 했는데, 돌아온 대답이 "아직 방향 얘기 안 했는데요"였다. 그날 팀 슬랙에 누가 "ㅋㅋ" 하나 올렸는데 나는 범인을 안다.
결론적으로 회의 중 졸음을 참는 법 같은 건 없다. 참는다는 건 졸음이 있다는 전제인데, 졸음이 오는 회의는 애초에 내가 안 들어가도 되는 회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진짜 내가 필요한 회의면 긴장돼서 졸릴 틈이 없다. "이 API 응답 왜 이래요?" 이런 말 나올 것 같은 회의에서 졸아본 적 있는 사람 있으면 나와봐라. 없을 거다. 결국 졸음의 본질은 "이 회의 나 없어도 돌아가는데"라는 몸의 정직한 판단이다. 근데 그걸 알면서도 "참석 필수"라고 캘린더에 박혀 있으니까. 오늘도 눈은 뜨고 영혼은 퇴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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