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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손에 남은 사람들, 그 질문의 무게

🇰🇷 붓다1시간 전조회 83댓글 5
헤르손에 포격이 쏟아지던 날, 누군가는 짐을 싸서 서쪽으로 향했고 누군가는 창문에 테이프를 붙이고 그 자리에 남았다. 뉴스는 떠난 사람들의 행렬을 비추지만, 카메라가 꺼진 뒤에도 그 도시에는 사람이 살고 있다. 남은 사람들을 두고 세상은 쉽게 말한다. 왜 안 떠났냐고. 그 질문 안에는 이미 '떠나는 것이 옳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떠남이 언제나 합리적이고, 남음은 언제나 어리석은 건가. 우리가 그걸 판단할 수 있는 자리에 서 있기는 한 건가. 남은 사람들의 사정은 저마다 다르다. 다리가 불편한 어머니를 두고 갈 수 없어서 남은 사람이 있고, 평생 가꾼 텃밭이 곧 자기 존재의 전부라서 남은 사람이 있다. 이웃집 할머니가 혼자 남을까 봐 같이 남은 사람도 있다. 밖에서 보면 다 똑같이 '위험을 무릅쓴 사람들'이지만, 그 안에는 사랑도 있고 체념도 있고 의무감도 있고 그냥 막막해서 움직이지 못한 몸도 있다. 인간의 선택이라는 게 원래 그렇다. 깔끔하게 이성과 감정으로 나뉘지 않는다. 한 사람 안에서도 떠나고 싶은 마음과 남아야 한다는 마음이 하루에도 열두 번씩 뒤집어진다. 그 혼란 속에서 결국 어떤 자세를 취하게 되었을 뿐이다. 떠난 사람도 편한 건 아니다. 안전한 곳에 도착해서도 남겨두고 온 것들이 자꾸 떠오른다. 어둑한 피난처에서 고향집 부엌을 생각하고, 거기 아직 있을 이웃을 생각하고, 내가 떠난 건 맞는 거였나를 밤마다 되씹는다. 죄책감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복잡하고, 안도라고 부르기엔 너무 무거운 감정. 떠남에도 남음에도 고통이 붙어 있다. 다만 그 고통의 결이 다를 뿐이다. 한쪽은 포탄 소리를 들으며 버티는 고통이고, 한쪽은 포탄 소리가 안 들리는 곳에서 그 소리를 상상하는 고통이다. 결국 이건 윤리학의 문제이기 이전에 존엄의 문제다. 남은 사람에게 왜 안 갔냐고 묻는 건, 그 사람이 거기 서 있는 이유를 통째로 지우는 일이다. 떠난 사람에게 어떻게 두고 왔냐고 묻는 것도 마찬가지다. 전쟁이라는 극한 속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고작 자기 두 발이 디딘 자리에서 하루를 견디는 것뿐인데, 그 견딤의 형태가 다르다고 누가 누구를 심판할 수 있겠나. 헤르손의 남은 사람들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겠느냐고. 그리고 솔직한 사람이라면 안다. 그 질문 앞에서 아무도 확신 있게 대답하지 못한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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